다리우스 마더 감독의 2019년 작품 『사운드 오브 메탈』은 한 드러머가 청력을 상실하며 겪는 심리적, 신체적 변화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로, 그래픽, 작가, 의상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래픽: 소리의 부재를 시각으로 표현한 감각적 언어
『사운드 오브 메탈』은 그래픽 요소를 전면에 드러내는 영화는 아니지만, 청각 상실이라는 비가시적인 주제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프레이밍, 색채, 촬영기법, 후반 그래픽 조정 등에서 매우 섬세한 전략을 사용한다. 영화의 그래픽 설계는 리얼리즘 기반의 촬영기법과 후반 색보정, 시청각 간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구성으로 이뤄지며, 관객이 주인공 루벤의 상태를 체험하도록 만든다. 먼저 화면의 색조는 루벤이 청력을 잃어가면서 점점 낮아지는 채도로 변화한다. 영화 초반 루벤이 루와 함께 공연을 하던 시기의 장면은 따뜻하고 노란빛이 감도는 톤으로 구성되어 삶의 생기와 에너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그의 청력이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하면서 화면의 색감은 무채색에 가까운 회색, 청색 계열로 바뀌며, 이는 그의 내면과 감각의 변화, 고립을 시각적으로 대변한다. 영화 중반 루벤이 청각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빛의 노출이 줄어들고, 인물 중심의 클로즈업이 늘어난다. 이때 카메라는 루벤의 얼굴, 손짓, 눈동자와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강조하며, 소리 없는 세계에서 의미를 주고받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촬영 구도는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리얼리즘을 넘어서, 루벤의 주관적 경험을 관객에게 이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자막과 타이포그래피의 처리이다. 청각이 멀어질수록 루벤이 말하거나 들은 소리에 대한 자막이 점점 줄어들거나 늦게 나오며, 화면에 아무런 자막 없이 무음만이 남는 장면은 청각적 경험의 상실을 더욱 극적으로 시각화한다. 자막의 부재는 오히려 자막 자체가 일종의 ‘소리’임을 관객에게 자각시키며, 언어와 의사소통에 대한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임플란트 수술 이후 기계적 소리를 접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화면의 떨림, 흐림, 인물 중심의 흔들리는 초점 등 시각적 불안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된다. 이처럼 영화는 그래픽적 장치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심리적 변화와 감각적 이질감을 시각화하기 위해 화면 구성을 신중하게 조정하였으며, 이는 루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시각적 언어로 작동한다. 『사운드 오브 메탈』의 그래픽 요소는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영화의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며, 그 자체로 감정의 ‘시각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작가: 다리우스 마더의 정체성과 수용에 대한 철학적 시선
『사운드 오브 메탈』의 각본은 감독 다리우스 마더가 직접 쓰고 감독까지 맡아 극도의 일관성과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영화의 기획 초기부터 루벤이라는 인물을 단지 청각장애인이 되어가는 인물이 아닌, 자기정체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해가는 인간으로 설정하였다. 각본은 루벤의 변화 과정을 단선적 구조가 아닌, 감정의 누적과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점진적으로 드러내며, 특정 사건보다는 그 사이사이의 감정 흐름에 집중한다. 루벤은 청력을 잃기 전에는 투어를 도는 메탈 밴드의 드러머로서, 루와 함께 음악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이 시기의 그는 음악이라는 정체성을 전부로 삼고, 자신을 존재하게 만드는 유일한 언어로 인식한다. 따라서 청력을 잃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청각적 기능 상실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근간이 무너지는 경험이며, 각본은 이 위기의식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루벤은 공동체에 들어가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끝까지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수술이라는 타협을 선택한다. 이는 루벤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기존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저항으로 해석되며, 작가는 이 과정조차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리우스 마더는 관객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묻는 대신, 변화하는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루벤이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소리를 제거한 채 고요 속에 잠긴 순간, 작가는 극적인 반전을 준비하지 않는다. 대신 정지된 화면, 무음의 장면, 비주얼의 미세한 떨림을 통해 루벤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는 인간이 변화 앞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그 결정이 반드시 성장이나 회복의 서사로 귀결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부분이다. 다리우스 마더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잃은 것을 수용하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러한 작가적 철학은 각 장면, 대사, 시점의 선택에서 명확히 드러나며, 영화가 클리셰를 회피하고 독립예술 영화로서의 힘을 갖추게 된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장애를 극복해야 할 문제로 설정하지 않고,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전환시키며, 작가로서 다리우스 마더는 감각, 신체, 관계, 존재라는 철학적 질문들을 각본이라는 언어로 정교하게 담아냈다.
의상: 시각적 리얼리즘과 정체성 표현의 도구
『사운드 오브 메탈』의 의상 디자인은 시각적으로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루벤의 정체성과 변화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도구로 기능한다. 초반 루벤은 헤비메탈 밴드의 드러머로서, 늘 헐렁한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 팔에 문신과 귀걸이를 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이 복장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그의 삶의 방식과 소속된 문화의 시각적 표현이다. 루벤과 루는 같은 공연 티셔츠를 입고, 땀과 먼지가 섞인 외형을 유지하며, 이는 그들의 삶이 자유롭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경계 위에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의상은 무대 위와 무대 밖의 삶을 구분하지 않고, 그들의 정체성과 예술이 완전히 중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청력을 잃고 병원을 찾고, 재활 공동체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루벤의 복장에는 변화가 생긴다. 티셔츠의 로고는 점점 사라지고, 헐렁한 옷 대신 몸에 맞는 기본적인 스웨트셔츠나 셔츠를 입게 되며, 이는 루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반영한다. 외투는 심플한 재킷이나 바람막이, 혹은 후드 집업 등으로, 캐럭터가 외부 세계와 단절되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모습을 부각시킨다. 공동체 내에서는 모든 사람이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고, 특정한 유행이나 개성이 부각되지 않는 스타일이 강조된다. 이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평등성과 외적 표현보다는 내적 수용에 중심을 둔 집단의 규범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루벤 역시 이들 사이에서 기존의 자신을 점차 벗어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영화 후반 루벤이 도시로 돌아가 수술을 받기 전, 마지막으로 입고 나오는 옷은 중립적인 색상의 긴팔 셔츠와 청바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복장은 초반의 루벤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그가 더 이상 이전의 정체성에만 의존하지 않음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또한 루벤이 루와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서로의 복장마저 달라져 있는데, 루는 공연 의상이 아닌 도시적이고 차분한 복장으로 등장하고, 루벤 역시 더 이상 무대의 사람이 아닌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의상의 변화는 감정의 흐름과 긴밀히 연결되며, 인물의 심리적 위치를 정확히 시각화한다. 디테일한 의상 구성은 사실감과 리얼리즘을 부여하면서도, 인물의 정체성 변화와 감정적 흐름을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관객은 이를 통해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진폭을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