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개봉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는 미국 현대 사회의 경제적 현실과 개인의 존재 방식을 섬세하고 시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스토리보드, 메시지, 조명을 소개하겠습니다.
스토리보드: 자유와 고독을 시각적으로 설계한 내러티브 구성
『노매드랜드』의 스토리보드는 전통적인 플롯 중심 영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영화는 명확한 갈등 구조, 위기, 해소 등의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으며, 주인공 펀이 유랑하는 여정을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마치 인생이라는 여정을 따라 무작위로 펼쳐지는 삶의 장면들처럼, 느슨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이어지는 시퀀스를 구성한다. 각 장면은 단독적으로도 강한 완결성을 가지면서 전체적으로는 펀의 내면 풍경을 형성하는 모자이크처럼 작용한다. 스토리보드는 인물의 이동과 정착, 만남과 이별, 자연과의 조우 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각 장면의 전환은 클로즈업이나 대화보다는 풍경 숏, 사운드의 변화, 일상의 행동을 통해 이뤄진다. 펀이 밴을 정비하고, 노을 아래 컵라면을 먹고,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장면 등이 특별한 설명 없이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이들이 내러티브를 구체적으로 이끄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토리보드는 감정의 흐름과 시각적 리듬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이는 각 장면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정서적 잔상을 남기도록 설계되었음을 보여준다. 펀이 다른 노매드들과 캠프파이어를 하거나, 멀리 사막의 바람을 마주하는 장면들은 서사의 필연적 연결이 아니라 감정적 호흡을 위한 배치로 기능하며, 이는 곧 이 영화의 구조가 전통적인 드라마라기보다는 시적 구성을 따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스토리보드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전작 『더 라이더』에서도 드러났던 방식으로, 인물의 변화나 사건의 추진이 외부의 충격이나 서사적 장치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관찰을 통해 서서히 누적되며 관객의 정서 속에서 완성되는 방식이다.
메시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 존엄과 공동체의 재정의
『노매드랜드』는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현대적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지만, 단순한 여행 영화나 자아 찾기의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삶과 그들만의 새로운 생존 방식, 공동체 형성, 인간 존엄성에 대한 성찰이다. 펀은 경제 붕괴와 남편의 죽음 이후 고정된 거주지를 포기하고 밴에서 살아가며, 각지의 임시 일자리를 전전한다. 이 유랑의 삶은 단순히 가난의 표현이 아니라, 전통적인 집과 정착이라는 개념에 대한 근본적 도전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들을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로 묘사하지 않고, 오히려 자본주의 질서에 맞지 않는 방식을 선택한 독립적 주체로 제시한다. 펀은 특정한 목표를 위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살아가기 위해 이동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상처와 상실을 나누게 된다. 밥 웰스나 린다 메이 같은 실제 노매드들이 등장하며, 이들은 자신의 상처와 삶의 철학을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한다. 영화는 그들의 말을 다큐처럼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리며 진정성을 획득한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를 통해 미국식 성공 신화와 그 이면의 구조적 불평등을 조용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낸다. 펀의 삶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그녀가 마지막에 선택한 것도 다시 정착하거나 남과 함께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진정한 자유란 외부 환경이 아닌, 내면의 수용에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된 이후, 유랑자들이 형성한 일시적 공동체의 의미를 보여주며,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고 치유받는지를 보여준다. 『노매드랜드』는 실패와 상실이라는 테마를 가볍게 다루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하며, 관객에게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는 단지 미국 사회에 국한된 메시지가 아니라, 현대 사회 전반에 대한 보편적 성찰로 확장될 수 있는 철학적 질문이다.
조명: 자연광의 리얼리즘과 감정의 서정성의 결합
『노매드랜드』에서 조명은 단순한 시각 연출을 넘어서 영화의 감정과 미학을 이끄는 핵심 요소이다. 촬영감독 조슈아 제임스 리차드와 감독 클로이 자오는 대부분의 장면을 자연광으로 촬영하며, 인공적인 조명 세팅을 철저히 배제했다. 이는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강화하는 동시에, 자연의 빛이 주는 감정적 서정을 화면에 직접 투영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노을, 새벽, 흐린 날, 달빛 등 하루의 다양한 시간대를 배경으로 펀의 여정을 담아내며, 조명은 인물의 감정선과 장면의 정서를 일관되게 표현한다. 예컨대 펀이 사막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에서는 붉고 부드러운 자연광이 화면 전체를 덮으며, 외로움과 평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조명은 단지 인물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빛으로 그려내는 회화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공적인 느낌을 최소화해 실제 노매드들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조명은 종종 프레임 바깥에서 들어오는 방식으로 설정되어 인물과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느껴지게 하며, 이는 펀과 자연의 일체감을 강조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실내 장면에서도 빛은 창문이나 문틈을 통해 유입되며, 항상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인공 조명을 최소화하고 자연광을 활용하는 방식은 헐리우드 전통과는 차별화된 미학적 전략이며, 관객이 마치 펀과 함께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또한 날씨의 변화, 구름의 움직임, 태양의 위치 등에 따라 장면의 분위기가 달라지며, 이는 영화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데 기여한다. 눈 덮인 산맥,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평원, 해질 무렵의 붉은 사막 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펀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하는 상징적 공간이 된다. 『노매드랜드』는 빛을 통해 말 없는 감정을 전달하고,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데 있어 조명의 역할을 극대화한다. 이는 현대 영화에서 보기 드문 조명 미학이며, 리얼리즘과 서정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인 표현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