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영화 『여덟 개의 산 』은 이탈리아 작가 파올로 코녜티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흥행, 세트 디자인, 연출기법을 소개하겠습니다.
흥행: 예술영화 시장에서의 이례적 성공과 국제적 반향
『여덟 개의 산』은 상업영화로서 대규모 흥행을 거둔 작품은 아니지만, 예술영화 시장과 국제 영화제에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2022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후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상영되며 아트하우스 관객층을 중심으로 꾸준한 관람을 이끌어냈다. 특히 유럽 내에서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에서는 1년 이상 장기 상영을 이어갔으며, 북미 시장에서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토론토 등 주요 도시의 독립극장에서 상영되며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 한국에서는 지방 상영관이 많지 않아 접근성에 한계가 있었으나, 서울 등 대도시 예술영화관에서는 꾸준히 상영되며 특정계층에서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전적으로 시각적 서정성과 정제된 감성에 기반한 것이며, 폭넓은 연령대와 감성적 공감대를 자극하는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덟 개의 산』이 지닌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주제의식은 관객들의 피로감을 위로하는 힘을 발휘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소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상당한 초기 관객몰이에 성공했으며, 영화가 원작의 철학과 서사를 충실히 구현했다는 평가가 긍정적인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또한 OTT 서비스와 영화제 VOD 플랫폼 등을 통해 비대면 관람 경로를 확보하면서 흥행의 롱런에도 성공했다. 비평적으로도 로튼토마토에서 90% 이상의 신선도를 기록했고, 메타크리틱 평점 역시 80점을 웃돌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두 주연배우 루카 마리넬리와 알레산드로 보르기 사이의 우정과 연기 앙상블은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처럼 『여덟 개의 산』은 대중적 흥행과는 결이 다르지만, 예술영화로서 전 세계적 관심과 장기적인 지지를 확보한 이례적인 사례로 남는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흔치 않은 유럽 독립영화로서, 흥행 측면에서 매우 성공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세트 디자인: 자연 그 자체를 무대로 삼은 공간 연출의 정수
『여덟 개의 산』은 산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주인공 그 자체로 기능하는 드문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인공적인 세트를 최소화하고, 실제 자연 환경을 중심으로 한 로케이션 중심의 세트 디자인을 통해 극도의 사실감과 감성적 깊이를 구현한 점이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지역으로, 해발 수천 미터에 이르는 고지대, 깊은 계곡, 작은 산촌 마을, 그리고 무인 산장에서 대부분의 장면이 촬영되었다. 이러한 공간은 캐릭터의 감정 변화와 삶의 방향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기능하며,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왜소함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관객에게 심리적 몰입감을 제공한다. 산은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난 유년 시절의 놀이터이자,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 다시 만나는 장소이며, 관계의 시점을 규정하는 축으로 작동한다. 세트 디자인은 기존의 건축미나 실내 세팅이 아닌, 자연광, 지형, 기후,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영화 중간중간 계절이 바뀌면서 공간의 색조, 빛의 각도, 풍경의 밀도 등이 변화하는 장면들은 마치 회화적 구성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주인공 브루노가 스스로 손으로 지은 산장 내부는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세트 구성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나무 판재로 만든 바닥, 거친 벽면, 손때가 묻은 작업도구들과 작은 난로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이곳에서 펼쳐지는 일상의 정경들은 공간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하게 한다. 이러한 자연 세트를 배경으로 한 디자인은 철저한 사전 조사와 실제 고지대 거주 경험을 통해 설계되었으며, 배우들과 스태프 모두가 장기간 현지 체류하며 체험한 감각이 세트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 영화에서 ‘세트 디자인’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미술 세트라기보다는, 자연 환경을 활용해 감정의 무대를 만든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자연의 조형성과 인물의 내면이 겹쳐지는 방식은 극도의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시적 서정을 가능하게 하며, 이러한 물리적 공간은 서사의 진정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장한다. 『여덟 개의 산』은 세트 디자인이 단지 배경이 아니라 주제와 감정을 직조하는 예술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연출기법: 시적 리얼리즘과 철학적 정적의 조화
샤를로트 반더메르슈와 펠릭스 반 흐뢰닝엔 감독은 『여덟 개의 산』에서 감정의 고조나 서사의 갈등을 강조하기보다는, 감정의 흐름과 공간의 감각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연출기법을 사용하였다. 영화의 전체 구조는 일관된 리듬과 정적인 화면을 통해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기보다는 감정의 결을 천천히 따라가게 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로 주목할 연출기법은 카메라의 고정성과 프레임 구성이다. 이 영화는 핸드헬드 카메라보다는 삼각대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구도를 선호하며, 광각 렌즈를 활용해 산의 풍경과 인물의 위치를 함께 프레임 안에 담는다. 이러한 방식은 공간의 압도감을 시각화하고, 인물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시적으로 풀어내는 데 효과적이다. 두 번째는 대사의 절제이다. 『여덟 개의 산』은 대사보다 침묵과 시선, 주변의 자연 소음을 활용해 정서를 전달하며, 관객이 말이 아닌 분위기로 감정을 이해하게 만든다. 바람 소리, 산장의 나무 삐걱이는 소리, 계곡의 물 흐름 같은 비언어적 사운드가 장면의 정서를 강화한다. 세 번째는 시간의 경과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연출은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지 않고도 계절, 빛의 변화, 의상의 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이 인물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체감하게 한다. 장면 전환이 갑작스럽거나 극적인 것이 아닌, 장면 속에 시간의 축적이 녹아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의 흐름을 직접 느끼게 한다. 네 번째는 연기 연출이다. 감독은 배우들에게 감정을 과장하거나 표현하지 않도록 지도하고, 인물의 내면이 시선, 자세, 움직임을 통해 전달되도록 유도했다. 루카 마리넬리와 알레산드로 보르기의 연기는 감정의 내면화를 전제로 한 리얼리즘적 연기로서, 일상의 행위를 통해 우정을 표현하고 감정을 구축하는 과정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연출 요소는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시적인 내레이션이다. 원작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철학적 문장들이 시점 변경 없이 등장하며, 이는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동시에 문학적 울림을 강화한다. 이러한 연출기법은 전통적 극영화의 방식과 다르지만, 관객이 감정과 철학, 자연과 인간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더 깊이 느끼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한다. 『여덟 개의 산』은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독자적인 연출 세계를 통해 자연과 존재, 우정과 시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제기하며, 연출기법이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