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감독 알란테 키르브라이테의 2015년 작품 『상가일레의 여름』은 여름의 찬란한 햇살 아래,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두 소녀의 이야기로 섬세하게 완성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세트 디자인, 작가, 그래픽을 소개하겠습니다.
세트 디자인: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시각적 공간
『상가일레의 여름』의 세트 디자인은 이 영화가 지닌 감성적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구현해 내는 물리적 공간의 언어이다. 대부분의 장면은 리투아니아의 시골, 호숫가, 숲, 공항 근처의 비행장 등 자연과 밀접한 공간에서 촬영되었으며, 이러한 배경은 단지 장면의 배경이 아닌, 인물의 감정과 성장의 메타포로 작용한다. 영화는 도시적인 구조물을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노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상가일레의 내면을 반영하는 심리적 배경을 형성한다. 그녀가 머무는 집은 전형적인 유럽식 별장 스타일로, 오래된 목재 가구, 짙은 초록색 커튼,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자연광 등이 독특한 정서를 부여한다. 인테리어는 다소 낡았지만 절제된 색감으로 구성되며, 그 자체로 상가일레가 느끼는 정서적 억압과 외부 세계와의 단절감을 반영한다. 반면, 라사가 사는 집은 훨씬 밝고 현대적이며 개방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는 두 인물의 세계관과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대비시키는 장치다. 특히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상가일레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을 따라, 그녀가 존재하는 공간도 점점 더 개방적이고 밝은 톤으로 전환된다. 세트는 이처럼 정적인 배경이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선과 호흡하며 변화하는 유기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항공 쇼가 펼쳐지는 비행장은 상가일레의 꿈과 두려움이 동시에 교차하는 공간으로, 넓은 하늘과 지평선, 금속성 비행기 구조물이 자아와 자유에 대한 상징으로 활용된다. 세트 디자인은 물리적 무대이자 감정의 배경이며, 리투아니아의 계절성과 빛, 공기, 질감 모두가 촘촘하게 시각적으로 연출되어 화면마다 내러티브적 깊이를 더한다. 특히 인테리어에서 사용된 색채는 영화의 주요 감정 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소품 하나하나의 배치 또한 철저히 감정의 표현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적 접근은 영화의 잔잔한 리듬과도 어우러져 관객이 장면 속에 녹아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 알란테 키르브라이테의 시적 페미니즘 시선
이 영화의 작가이자 감독인 알란테 키르브라이테는 『상가일레의 여름』을 통해 리투아니아 영화계에 여성 중심 서사의 가능성을 열어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시나리오는 구조적으로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감정의 레이어와 상징의 층위를 정교하게 구성해 인물의 심리를 생생하게 드러낸다. 상가일레는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내성적인 소녀지만, 실제로는 불안 속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내면은 말보다 행동, 공간, 시선의 방향을 통해 드러나며, 알란테 키르브라이테는 이를 인위적인 대사 없이도 표현해낸다. 각본은 상가일레와 라사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전형적인 퀴어 로맨스를 따르지 않고 상가일레가 주체로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핵심으로 한다. 라사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상가일레가 자신을 받아들이고 외부 세계와 연결되도록 하는 촉매로 기능하며, 작가는 이를 통해 '사랑을 통한 해방'이라는 주제를 사변적으로 풀어내는 대신 시적으로 전달한다. 그녀는 상가일레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그 감정을 관객이 읽을 수 있도록 장면의 흐름과 상황 설정을 조율하며, 이는 서사의 몰입도를 극대화시킨다. 이 영화는 알란테 키르브라이테 감독 자신의 성장 경험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나와 닮은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다"라고 밝혔고, 이 같은 진정성이 영화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 그녀는 감정의 전시보다는 공감을, 극적인 전환보다는 자연스러운 진화를 선택하며, 이러한 작가적 철학은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난 새로운 여성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상가일레의 여름』은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니라, 자아 수용과 회복, 정체성 인식의 과정을 섬세하게 설계한 문학적 텍스트이며, 그 중심에는 시적 언어를 지닌 작가의 시선이 있다. 키르브라이테는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후 리투아니아 영화계뿐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 계열에서 중요한 여성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이후에는 리투아니아와 프랑스 등지에서 활동하며, 섬세한 여성 감수성과 독특한 시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픽: 자연과 감정이 겹쳐지는 영상 시학
『상가일레의 여름』은 그래픽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촬영 방식과 색채, 편집 기법 등 시각적 조형을 통해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매우 독창적인 비주얼 스타일을 구현한다. 영화는 사실적 리얼리즘보다는 감정의 인상을 시각화하는 인상주의적 기법을 활용하며, 이는 조명, 색보정, 프레임 구성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영화의 톤은 계절에 맞는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여름 햇살 특유의 따사로움과 눈부심을 화면에 그대로 담아낸다. 이 빛은 단순히 현실을 밝히는 조명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투영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예컨대 상가일레가 불안에 잠긴 순간에는 강한 햇빛이 얼굴을 절반만 비추거나, 실루엣으로 표현되어 내면의 이중성을 시각화하며, 반면 그녀가 라사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부드럽고 균일한 빛이 화면을 감싸 안는다. 색채 역시 그래픽적 요소로 적극 활용되며, 상가일레의 방은 차가운 청색과 회색톤이 주를 이루는 반면, 라사의 세계는 따뜻한 주황색, 노란색 등이 사용되어 시각적으로 대비된다. 편집은 빠르지 않으며, 때로는 프레임이 정지된 듯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이러한 편집 리듬은 인물의 정서 변화와 맞물려 화면 자체가 감정을 느끼는 듯한 착각을 유도한다. 그래픽적 요소로 주목할 부분은 드론 촬영과 공중 장면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현실을 벗어난 듯한 감정을 부여하며, CGI가 아닌 실제 공중 촬영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이 장면은 상가일레의 꿈이자 두려움이며, 시각적 상징으로서 극 중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로 남는다. 또한 사운드와 이미지의 결합도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음악의 박자와 이미지의 전환이 일치함으로써 시청자는 그래픽 디자인이 아닌 실제 감각의 흐름을 체험하게 된다. 『상가일레의 여름』은 이처럼 정적인 이미지와 동적인 감정, 현실과 상상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넘나드는 감성적 그래픽 전략을 통해 영화 자체가 하나의 비주얼 시로 기능하도록 만든다. 작위적 그래픽은 없지만, 영상의 미장센 전체가 감정을 조형하는 그래픽 그 자체로 작용하며, 관객은 이를 통해 영화적 언어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